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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EP. 16·역사세계 고대사

이집트 고왕국 — 피라미드를 움직인 국가와 사람들

조세르와 쿠푸의 피라미드 뒤에는 어떤 국가와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노동자 정착지의 동물 뼈, 메레르의 운송 일지, 왕실 제의와 지방 사회를 따라 고왕국을 살펴봅니다.

노동자의 식량 공급과 법적 신분을 구분하고, 메레르 일지가 보여주는 운송의 범위를 살핍니다. 고왕국의 변화는 정치·자원·환경의 여러 관계 속에서 이야기합니다.

20:01한국어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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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래입니다. 오늘은 이집트 피라미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거대한 돌을 어디서 가져왔고, 그걸 나르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요?

안녕하세요. 도윤입니다. 저는 공사가 시작되는 아침을 생각하게 돼요. 돌을 다룰 사람만 모인다고 일이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배를 준비하고, 식량을 보내고, 일정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어야 했겠죠.

그래서 오늘의 무대는 이집트 고왕국입니다. 구왕조 이집트라는 이름으로 접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흔히 피라미드 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부터 짚어보죠. 제3왕조에서 제6왕조까지, 대략 기원전 27세기부터 22세기 무렵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수백 년이나 되는 시간이네요. 그런데 기관마다 연표가 조금씩 다르더군요. 어떤 박물관은 고왕국의 시작과 끝을 다른 연도로 잡고, 어떤 연구 기관은 제8왕조까지 포함합니다. 우리가 정한 범위도 고대 사람들이 직접 붙여 놓은 시대 이름은 아닌 거죠?

네. 뒤에 역사를 정리하며 만든 구분입니다. 오늘은 왕의 즉위 연도를 하나씩 외우기보다 건축과 권력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좋겠어요. 도윤 씨가 처음 떠올린 공사 현장으로 가기 전에 사카라부터 들러볼까요?

사카라에는 제3왕조 조세르 왕의 계단 피라미드가 있죠. 층층이 올라간 모습이 기자의 피라미드와는 다릅니다. 조세르의 장례 공간은 왕실 무덤이 커다란 석조 복합체로 발전한 중요한 사례예요.

넓은 마당과 제의를 위한 건물들이 모여 있고 땅 아래에도 공간이 이어집니다. 왕을 묻는 일과 왕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일이 한 장소에서 만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죽은 왕을 위한 제의를 이어가고 왕권의 의례를 사후에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니까요.

그 다음 제4왕조의 스네프루 때에는 피라미드 모양도 크게 달라지죠. 메이둠과 다슈르에 세 거대 피라미드가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네. 계단 형태에서 매끈한 사면을 가진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이 드러납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도 그 흐름 안에 있죠.

굴절 피라미드는 위쪽으로 가다가 경사가 달라져서 특히 눈길을 끌어요. 다만 모양이 꺾였다는 관찰과 왜 설계를 바꾸었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구분해야겠죠?

그렇죠. 형태 변화가 분명히 보이더라도 구체적인 원인을 하나로 못 박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스네프루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등장하죠. 사카라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건축 경험을 거쳐 기자로 이어지는 겁니다.

사실 서로 다른 왕들의 무덤이잖아요. 가장 큰 것이 쿠푸의 대피라미드이고 다른 두 피라미드는 카프레와 멘카우레의 것입니다. 한 왕이 세 개를 모두 지은 것으로 생각하면 순서를 놓치겠네요.

피라미드 곁에 장제 신전, 경작지 가장자리 쪽 계곡 신전, 둘을 연결하는 참배로가 함께 있었어요. 장례를 치르는 순간뿐 아니라 그 뒤 왕을 위한 제의가 이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면 공사가 끝났다고 해서 그곳의 활동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군요. 사제와 관리가 일하고 제물과 물자가 들어오는 공간이 계속 남는 거예요.

그 넓은 연결의 중심에 멤피스 지역이 있었습니다. 행정 중심과 사카라, 기자의 왕실 묘역이 서로 이어졌죠. 오늘날 지도에서 수도에 점 하나를 찍는 방식보다는 나일강 주변의 수로와 여러 장소가 함께 기능하는 지역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당시에는 강과 경작지, 행정 공간과 묘역의 관계가 중요했겠죠. 그렇다면 이런 큰 사업에 사람과 자원을 모으는 왕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특히 제4왕조의 왕권은 신성한 지위와 밀접했습니다. 왕을 위한 장례 건축은 국가와 종교의 질서에 연결됐고 고위 관료에는 왕족도 많았죠. 다만 이런 관계가 고왕국 내내 그대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제 그 조직 안에서 실제로 일한 사람들을 살펴보죠.

현장에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석재를 자르고 다듬는 석공과 돌을 옮기는 인력, 배를 움직이는 선원까지요. 도윤 씨가 처음 말한 공사 현장의 아침을 이 사람들로 채울 수 있겠네요.

거기에 식량을 조달하고 나누는 사람, 물자와 작업을 기록하는 서기도 필요했겠죠. 인원 규모도 궁금한데요, 기자 피라미드를 짓는 데 몇 명이 참여했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나요?

하버드의 기자 연구 소개에서는 2만에서 3만 명가량을 추정하기도 합니다. 다만 인원표가 온전히 남아 확인한 숫자는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는지, 현장과 지원 인력을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규모 추정입니다.

숫자를 확정하지 않아도 먹여야 할 사람이 많았다는 문제는 남네요. 그런데 그런 급식 이야기를 문서만이 아니라 땅에서 나온 흔적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면서요?

기자 노동자 정착지의 동물 뼈가 그 단서입니다. 소와 양, 염소의 뼈가 많이 확인됐고 동물의 나이와 성별 구성도 연구했어요. 먹고 남긴 흔적을 분석해서 큰 공동체에 고기를 공급했던 방식까지 살펴보는 겁니다.

뼈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공급 방식까지는 어떻게 나아갈까요? 발굴에서 확인한 것과 연구자들이 재구성한 부분을 조금 나누어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동물 종류와 나이, 성별 분포는 뼈를 조사해 얻은 관찰입니다. 그 구성에 맞춰 생산지와 운송을 설명하는 데에는 모형이 들어가죠. 기자 주변만으로 많은 가축을 기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넓은 지역에 공급을 조직했을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동물 뼈는 큰 급식 체계를 이야기해 주지만 어느 노동자가 어느 날 무엇을 먹었는지까지는 알려주지는 않겠네요. 모두가 매일 소고기를 배불리 먹었다거나 잘 먹었으니 모두 만족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네. 음식과 노동자의 신분도 같은 질문은 아니에요. 공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그 사람이 이 일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는 따로 따져야 하죠. 도윤 씨, 당시의 배급을 오늘날 회사에서 받는 월급처럼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고왕국의 노동을 설명할 때는 곡물이나 음식 같은 현물 공급과 국가나 기관에 대한 의무를 함께 봐야 해요. 돈을 받고 자유롭게 계약을 맺는 오늘날의 노동 관계와는 조건이 달랐습니다.

여기서 부역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군요. 일정한 의무에 따라 노동을 제공하는 관계를 뜻하지만 모든 현장 인력이 똑같은 방식으로 동원되었다는 뜻은 아니겠죠. 숙련 노동과 기관에 소속된 노동, 의무 노동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대의 노동 관계를 모두 노예라는 말에 넣거나 반대로 모두 자유로운 자원봉사자였다고 말하면 둘 다 설명이 거칠어집니다. 급식만으로 법적 신분이 결정되지는 않죠.

농사일이 한가한 때 농민들이 와서 전부 지었다는 설명도 자주 들었어요. 교대 인력이 참여했을 가능성과 농민만으로 모든 공정을 수행했다는 주장은 다른 이야기겠네요?

네. 숙련된 인력과 여러 작업의 연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가진 자료만으로 모든 팀의 근무표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인력이 얼마나 자주 교대했는지를 세세하게 말할 때에는 재구성이라는 점을 남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라고 한데 묶어도 고왕국과 신왕국은 시기가 크게 다르죠. 후대 노동자의 파업 기록이나 생활상을 기자 현장에 그대로 붙이면 안 됩니다.

동물 뼈를 보면 누군가 식량을 준비하고 옮겼다는 질문이 생기고, 배급을 보면 누가 수량을 관리했는지가 궁금해지죠. 왕의 명령 하나 뒤에 여러 손길이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돌을 끌어올리는 장면만 떠올렸는데 지금은 배와 창고, 식량을 나누는 자리까지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도 이런 연결을 좀 더 구체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자료가 있나요?

쿠푸 시대의 메레르 일지가 있습니다. 감독관 메레르의 작업반이 언제 움직이고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 적은 파피루스예요. 그 일정을 따라 물류의 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메레르 팀이 오간 곳을 짚어보죠. 쿠푸 통치 말기, 투라에서 돌을 배에 싣고 아케트쿠푸 방향으로 운반한 일정이 남아 있습니다. 아케트쿠푸는 쿠푸의 피라미드와 연결된 이름이죠.

투라와 아케트쿠푸 사이를 오가고 중간에 정박하며 다시 돌을 싣는 활동이 되풀이됩니다. 기록에는 팀과 급식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어요.

발견지는 홍해 연안의 항구 유적 와디 엘 자르프입니다. 이곳에서 파피루스가 나왔다고 해서 일지에 적힌 석재가 와디 엘 자르프에서 기자로 운반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문서가 남은 장소와 그 문서가 기록한 작업 장소를 따로 생각해야겠네요.

네. 우리가 따라가는 석재 운송은 투라에서 기자의 아케트쿠푸 방면입니다. 와디 엘 자르프는 별도의 항구 유적으로 기억하면 됩니다. 메레르의 기록 덕분에 특정 팀이 수로를 이용해 움직였다는 장면은 보이지만 그 팀의 모든 활동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배에 실은 돌은 주로 피라미드의 외장을 위한 고운 석회암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기록에 등장하는 돌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외장석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어요.

저는 여기서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배에서 내린 돌을 피라미드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옮겼는지도 기록돼 있나요? 공사의 전체 방법까지 설명해 주는 문서일까요?

그 부분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메레르 일지는 팀의 운송과 업무를 기록한 문서이고 전체 축조법을 설명하는 설계서는 아니에요. 그래서 수로 운송의 구체적인 증거를 얻었다는 것과 돌을 꼭대기까지 올린 방법이 모두 풀렸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어느 날 돌을 싣고 어느 곳에서 밤을 보냈다는 반복이 있으니까 거대한 공사도 여러 차례의 작업과 이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가까워집니다. 모르는 부분도 함께 남아 있고요.

한 번의 웅장한 장면보다 여러 팀의 일정이 이어진 사업이라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동과 물자를 왕의 무덤에 모으는 일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사후 세계와도 연결돼 있었겠죠?

그렇습니다. 왕을 위한 제의 시설을 함께 지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좋겠어요. 오늘날 우리가 건물과 종교를 따로 분류하는 것과 달리 왕의 사후 존재와 신성한 지위는 장례 복합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생각을 문자로 만나는 곳도 있습니다.

제5왕조 마지막 왕 우나스의 피라미드 안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죠. 왕의 사후 존재를 돕는 주문들이 내부 공간의 벽에 남아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크기가 줄어든다고 종교적 의미나 제의 활동까지 함께 줄어든 것은 아니군요. 신전의 장식과 구성이 달라지는 모습도 봐야겠습니다. 다만 우나스의 벽에 주문이 새겨진 시점을 곧바로 이집트 내세 신앙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벽에 남은 기록의 시점과 믿음이나 의례가 생겨난 시점은 다르니까요. 앞선 전통이 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되 그 전통이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전해졌는지까지 이 자료만으로 확정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후대 사자의 서와도 구분해야겠죠. 둘 다 사후 세계에 관한 문헌이지만 우리가 여기서 만나는 것은 고왕국 왕실 피라미드 안의 주문들입니다. 다른 시기의 문헌을 같은 책처럼 부르면 글이 쓰인 장소와 이용한 사람들의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주문이 새겨진 벽과 왕을 위한 제의 공간을 함께 보면 장례 건축의 쓰임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장례 자료는 믿음을 보여주면서 누가 어떤 지위를 누렸는지에 관한 질문도 던지게 해요.

왕실 장례 공간을 계속 운영하는 일도 사람과 자원을 필요로 했겠네요. 피라미드를 완성한 순간만 생각하면 지나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면 왕실 바깥 관료들의 무덤에서도 사회가 달라지는 모습을 읽을 수 있을까요?

네. 왕실 장례 공간만으로 고왕국 사회의 모든 사람을 대표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무덤들과 함께 보면 누가 부를 모으고 영향력을 키웠는지도 질문하게 됩니다. 지방에서 커지는 무덤도 당시 권력 관계를 살펴보는 단서가 됩니다.

네. 제5왕조와 제6왕조에 걸쳐 고위 관료들의 부와 영향력이 커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특히 후기에는 지방에서 일하던 관료들이 그곳에 크고 화려한 무덤을 마련하죠. 멤피스 주변에 집중했던 시선을 이집트 여러 지방으로 넓혀야 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무덤의 크기만 재고 곧바로 중앙정부가 무너졌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겠어요. 같은 흔적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죠?

그렇습니다. 지방 관료가 강해진 모습을 왕의 통제력이 느슨해진 신호로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반대로 국가가 지방에 관리들을 보내고 자원을 조직하면서 행정의 존재가 더 넓게 자리 잡은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큰 지방 무덤 하나가 둘 중 하나를 자동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지방에서 힘을 얻은 사람이 왕과 계속 연결돼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중앙과 지방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다만 고왕국 말기에 중앙의 통제가 약해졌다는 변화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페피 2세의 긴 재위와 왕위 계승 문제도 설명에 등장하죠. 재위가 90년이 넘었다는 전승은 논란이 있으니 그 숫자 하나를 국가 해체의 원인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정치적 변화에 환경의 압박까지 겹쳤을 가능성도 살펴야겠군요. 기원전 2200년 무렵을 이야기할 때 약 4200년 전의 기후 변화가 자주 언급됩니다. 흔히 4.2킬로년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사카라의 지질과 고고학 자료를 다룬 한 연구는 건조화와 낮은 나일강 홍수뿐 아니라 집중호우도 논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확인한 환경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인 만큼 그것만으로 이집트 전역의 상황과 시점을 모두 정할 수는 없어요.

비가 부족한 문제와 갑자기 많이 내리는 문제가 함께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네요. 나일강 농업을 생각하면 물이 언제 얼마나 오는지가 중요했을 겁니다. 다만 환경 자료가 곧바로 왕조의 정치사를 설명하는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니겠죠?

2024년에 나온 기후 연구는 여러 지역의 많은 기록을 모아 비교했어요. 4200년 전 무렵의 변화가 하나의 동시적인 광역 사건이라는 그림을 다시 검토한 연구입니다.

그 연구는 지역마다 변화의 양상과 시점이 복잡하다고 보죠. 그렇다고 이집트에서 기후 충격이 전혀 없었다는 결론으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여러 지역을 비교하는 분석과 특정 지역의 농업이 겪은 영향을 설명하는 일은 질문의 크기가 다르니까요.

맞아요. 기후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거나 아무 영향도 없었다는 두 결론 모두 자료보다 앞서갑니다. 정치적 관계와 자원 조직, 환경 압박이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살펴야겠죠. 나일강의 변화가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왕조 변화의 단일한 해답으로 고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 관계가 달라지며 중앙의 힘이 약해지고 고왕국에서 제1중간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집트의 삶 자체가 한순간에 끝난 것은 아니에요.

오늘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거대한 피라미드를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죠. 저는 돌을 나르는 배와 선원, 식량을 모으는 사람과 기록을 맡은 서기가 함께 떠오릅니다. 나래 씨에게는 어떤 장면이 남았나요?

저는 먹고 남은 동물 뼈와 반복적인 일과표가 함께 남습니다. 왕의 큰 사업 안에서 누군가는 식량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돌을 실은 채 다음 정박지로 움직였겠죠. 그렇지만 그 흔적만으로 모든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지까지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묶은 제도와 믿음도 함께 보았죠. 왕의 신성한 지위, 장례의 제의, 우나스의 벽에 새겨진 주문들은 건축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보여줍니다. 물자와 노동만으로도, 신앙만으로도 피라미드의 전체 모습을 담기는 어렵겠습니다.

조세르에서 스네프루, 쿠푸로 이어지는 동안 건축이 달라졌고 뒤에는 관료와 지방 사회의 관계도 변했습니다. 수백 년을 하나의 정지된 장면처럼 생각하지 않으니 같은 고왕국 안에서도 다른 질문들이 보이네요.

저는 메레르의 배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기록이 보여주는 구간은 분명히 따라가되 그 뒤의 모든 공정을 안다고 채워 넣지는 않으면서요.

오늘은 피라미드를 움직인 국가와 사람들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거대한 돌 곁에 배와 식량, 제의의 공간과 기록을 놓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도윤 씨, 질문을 함께 따라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청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오늘의 고왕국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남아 있는 무덤과 문서에서 어떤 삶을 읽을 수 있을지 다음에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끝까지 귀 기울여 주신 청취자 여러분,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나래와 도윤이었습니다.

참고한 원문 801Egypt in the Old KingdomMetropolitan Museum of Art / Tara Prakash02Historical TimelineNational Museum of Egyptian Civilization03Pyramids and ProteinAncient Egypt Research Associates04Digital Giza: Frequently Asked QuestionsHarvard University Giza Project05EconomyUCLA Encyclopedia of Egyptology / Ben Haring06Les papyrus de la mer Rouge I: Le journal de MererIFAO / Pierre Tallet, institutional excerpt07Climate change at the end of the Old Kingdom in Egypt around 4200 BPQuaternary International / Fabian Welc and Leszek Marks08The 4.2 ka event is not remarkable in the context of Holocene climate variabilityNature Communications / Nicholas McKay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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