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프랑스 혁명과 베르사유
삼부회가 파리에서 열렸다면?
Plotnodes 첫 번째 IF 모음 · 원작에서 출발해 새로 쓴 비공식 이야기
어디에서 달라졌나요?
원작 상황
재정 위기와 정치적 불만 속에서 루이 16세가 소집한 삼부회가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에서 열렸다.
바꾼 조건
1789년 5월 5일 삼부회의 개회 장소가 베르사유가 아니라 파리로 정해진다.
이야기의 시작
1789년 5월 5일, 삼부회 대표들은 베르사유가 아닌 파리의 한 회의장 앞에 모였다. 루이 16세의 소집은 그대로였지만, 왕명이 지정한 장소만 달라져 있었다. 문지기가 종이에 적힌 ‘파리’를 다시 읽자, 성직자 대표들은 먼저 들어갈 순서를 따졌고 귀족들은 통로를 비우라며 재촉했다. 제3신분 대표 한 명은 문턱 앞에서 발을 멈췄다. 서로 다른 신분의 대표들이 한꺼번에 들어서기엔 복도가 비좁았다. 누구든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그 순서가 회의의 첫 선언처럼 보일 터였다. 문지기는 왕명서를 접지 못한 채 양쪽의 재촉을 번갈아 들었다.
제3신분 대표가 문턱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먼저 들어갈 신분을 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성직자와 귀족의 대답이 엇갈리는 사이, 왕명서는 아직 문지기의 손에서 펼쳐져 있었다.
이어서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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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출처 보기
다음 내용은 원작과 역사에서 가져왔어요. 위의 바꾼 조건과 장면은 Plotnodes의 창작입니다.
1789년
이야기가 시작되는 구간 · 1789년
그대로 두는 내용
- 프랑스가 군주국이다
- 성직자·귀족·제3신분의 구분이 존재한다
확인한 자료
- Versailles at the heart of the French Revolution · Établissement public du château, du musée et du domaine national de Versailles · 확인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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